0 문명의 발달은 인간들을 신의 시대에서 멀리 떨어트려 놓았다. 병이나 재해를 신벌로 해석하는 문명은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 기도 대신 의학기술이, 제사장 대신 의사가 그 자리를 채웠다. 이 시대에 신이나 악마는 없다. 적어도 인간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인간들이 더는 신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자, 신과 신화생물들은 역사의 그림자 아래로 자취를 감추었다. 왜? 인류의 믿음이 옅어져 그들의 절대적인 권능이 빛을 바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작 인간을 피해 숨어야 했을 만큼 나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도망치듯 사라진 까닭은 주신의 명 탓이었다. 인간들의 숭배를 버리고 대신 인간의 삶에 섞여 들어가자는 주신 아담의 말에, 그 누구도 감히 이견을 표하지 못하고 굴복했다.
기원후(AD). 신들은 에덴의 문을 닫고 지상에 발을 디뎠다.
신이 인간과 같이 걷게 되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만이 답이라던가. 수 세기가 지나고서야 신들은 그럭저럭 인간 사회에 녹아 들어갔다. 그들은 이제 인간의 이웃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여성이기도 했고, 남성이기도 했으며, 또 다른 무엇이기도 했다. 때로는 정치인으로, 때로는 예술가로, 개중에는 신을 섬기는 사제를 자청하기도 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인류사에 흔적을 남겼다.
드문 일이었지만 인간과 사랑에 빠진 일부는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그런 가정에서 태어난 반신반인 아이는 운명에 따라 인간으로 길러지거나 신이 되었다.
세대와 세대를 거듭하며 인간들이 서서히 신을 잊어가는 만큼, 인간 사회에 동화된 신들조차도 주신의 권능을 흐리게 여기기 시작했다. 신이 실수, 또는 실수를 가장하여 인간에게 정체를 들키는 사건이 늘어난다. 그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초자연적인 존재에 두려움을 느낀 인간들은 세계 도처에서 마녀사냥을 벌였다. 신들은 감히 신을 사냥하겠다 떠들어 대는 인간들의 추태에 눈살을 찌푸렸다. 두 종족 간의 감정의 골이 깊어짐에도 주신은 원인이 되었던 엘로힘만을 가혹하게 처벌할 뿐 달리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해서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런 사건이 거듭되자, 불경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주신이 너무 오래 인간과 친하게 지내어 분별을 잃었다고, 그래서 대외적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는 것이라고.
1 14세기. 악한 것들의 신 릴리트가 휘하의 악신들을 선동하여 반역을 일으킨다. 주신에게 실패작 취급을 받던 악신들은 그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들은 엘로힘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대신 스스로를 아흐리만, ―세상의 모든 악이라고 칭한다. 이것이 최초의 거역이었다. 그 다음으로 아흐리만은 신의 존재를 숨기라는 주신의 명을 어기고 인간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세계 도처에서 아흐리만이 일으킨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 반란을 두고볼 수 없게 된 주신은 엘로힘들을 소집하여 뜻에 거역하는 자들을 소탕했다. 아흐리만은 인간을 매혹해 세력을 늘려서 그들에게 대적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전쟁이 세 세기 동안 이어졌다. 싸움이 끝을 맺은 것은 이미 수많은 신화생물들이 생명을 잃고, 더 많은 자가 죽음보다 못한 나락에 떨어진 이후였다. 엘로힘이 간신히 승기를 잡아 릴리트가 붙잡힌 날, 숙청이 시작되었다. 주신에게 충성하던 신들은 반역에 가담했던 아흐리만을 찢어 죽였고, 죽지 않는 자들은 지하의 무저갱에 처박았다. 아흐리만의 수장 릴리트 또한 이때 나락의 가장 깊은 곳에 감금되었다.
허나 혁명의 불씨를 꺼트리기에는 모자란 형벌이었을까. 신벌을 피해 겨우 목숨을 보전하고 도망친 아흐리만들은 인간 사회에 몸을 숨기고 다시 한 번 혁명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대가 흘러 21세기. 어느 찰나의 봄날이었다.
2 " 내가 내 아이들을 다시 한데 모아 화해를 도모하려 하니, 단 하나도 빠지지 않고 자리에 참석하길 바라노라. "
3 지상 위의 모든 엘로힘은 물론, 모습을 감추고 살던 아흐리만에게까지 모든 신족에게 주신의 전언이 닿았다. 신분과 사정은 각기 달랐다. 개중에는 과거 주신에게 앞장서 적의를 드러내던 혁명군의 요직도 있었다. 인간의 사회에 녹아들어 신으로서의 삶을 스스로 부정하던 자도 있었고, 본래 인간이었다가 아흐리만과 계약을 맺고 악의 권속이 된 자도 있었으며, 엘로힘과 인간의 혼혈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자신이 인간 외의 무엇일 거라 상상해보지도 못한 자까지 섞여 있었다. 이 전언을 들은 자가 누구든 수 세기를 거듭해 온 악연을 이 자리에서 끊어내겠노라고, 터무니없는 평화론을 말하는 주신의 말에 동요하지 않은 사람은 적었다.
속내는 서로 다르겠지. 여전한 충성심일 수도 있고, 그저 호기심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다시 한 번 혁명의 불꽃을 올리고자 마음속에 품고 있던 자의 발돋움일 수도 있었다. 오래 전 그랬듯이 그 누구도 주신의 명에 거역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주신이 바라는 대로, 아폴리온*으로 향한다.
* 아폴리온 : 커뮤니티 설정상의 가상의 해상 도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주신이 생명을 창조하고 가장 먼저 이름을 부여한 자들이 엘로힘, 다른 모든 언어로 일컫는 신이다. 인간의 신화에는 보통 천사나 신족으로 묘사된다. 이들은 주신의 권속 하에 있으며 그의 통제를 직접 받으며 충성을 바친다.
주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진 자들을 보통 신이라고 부르나, 간혹 인간과 신의 피가 섞인 반신까지 그 범주 안에 넣어 부르는 자들도 있었다.
아흐리만에 비해 상급 존재라 여겨지며 강한 권능을 누리지만, 선하고 순수한 존재였던 탓에 전투와 파괴에 관해서는 아흐리만보다 못한 면을 보이기도 한다.
신
불로불사. 보통은 주신 아담과 유사한, 인간을 닮은 모습을 기본으로 하지만 인외의 모습을 가진 개체가 존재하기도 하다. 이런 자들도 인간 사회에서는 모습을 바꾸어 평범한 인간의 외모로 생활한다. 생김새와 특징이 인간과 매우 흡사한 종족이지만, 식욕 등 인간적인 욕구는 매우 적거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간 사회에 동화된 정도에 따라 개체차가 있다.
번식이 필수적이지는 않아 엘로힘 사이에서 관계가 있더라도 아이가 태어나지는 않으나, 인간이나 아흐리만과의 사이에서 혼혈을 만들 수는 있다. 아흐리만과 엘로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죽임을 당한다.
인간에게 본인의 존재를 들키거나 인간의 눈에 띄는 곳에서 권능을 사용하면 주신에게 벌을 받는다.
반신
조상 중 희석된 신의 피가 갑자기 발현된 돌연변이, 또는 신이 아이의 부모 중 하나와 직접 관계하여 만든 아이이다. 대부분 죽을 때까지 본인이 신의 자식이라는 것을 모르나, 사고나 죽음의 경험 등으로 자신도 모르게 권능을 발휘하여 스스로의 존재를 알게 되는 케이스가 드물게 있다. 이런 자들은 반신이라 불리며 평생을 신도 인간도 아닌 존재로 사회 밑바닥에 숨어서 지낸다.
불로불사는 아니나 인간으로서는 매우 긴 수명을 누린다. (200년 전후)
권능은 개체 차이가 있지만, 신의 그것에 비교할 바는 되지 못한다. 생명을 부여하거나 질량 보존의 법칙을 무시하지는 못하나, 인간 상대로는 위협적인 위력을 낼 수 있을 정도.
엘로힘 사이에서는 반신에 대해 묘한 차별의 시선이 있다.
신과 악마는 본디 뿌리는 같았다. 부정적인 가치를 다스리기에 신들은 너무 순수했기에, 아담은 악의 권능을 다룰 존재들을 새로 창조해야 했다. 악마(魔)라는 이름보다 악신(神)이라는 단어가 어쩌면 더 잘 맞을 지도 모르지. 이들은 아담의 손에 창조되었으나 그의 직계 권속이 아니라, 최초의 악마 릴리트의 권속 아래에 들어갔다.
최초의 악신들과, 그들이 인간을 홀려 계약한 하급의 아흐리만, 일명 추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권능의 본질은 신과 다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지는 못하지만, 대개 파괴에 특화되어 있다.
악마
불로불사에 가깝지만, 단숨에 마력을 크게 소모하면 소멸한다. 적어도 대륙 하나를 날려버릴 만큼 많은 양을 필요로 하기에, 순수한 아흐리만이 소멸하는 일은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엘로힘과 마찬가지로 욕구는 옅은 편이지만 개체별로 편차가 크다. 특정 욕구만 비정상적으로 높은 개체도 드물게 있는 모양. 아흐리만으로서 독립한 이후로는 주신을 거부하고 있기에, 개체수 유지는 창조가 아닌 번식을 통해 일구어 나가고 있다.
동물과 유사하게 번식이 가능한 발정기가 존재하며 이 기간 동안 관계를 가지면 수태할 확률이 있다. 개체마다 주기 차이가 있지만, 더 고위의 아흐리만이나 엘로힘이 강제로 이끌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
추종자
본래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아흐리만과 계약하여 권속이 된 존재이다. 계약 당시 부여받은 마력을 다하지 않는 한은 죽지 않고 영생을 누릴 수 있다. 계약자인 아흐리만에게 마력을 추가로 부여받는 것도 가능. 계약의 내용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영혼을 팔아넘길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소망이 필요하다. 이런 인간과 계약하는 악마는 소원에 합당한 대가를 가져가고 그의 소원을 이뤄준다. 계약 조건에는 보통 계약 주인 악마에 대한 절대복종이 포함되어 있다.
계약 관계로 묶여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보통의 악마와 차이가 없으며, 추종자로서 오랜 세월을 보낸 자라면 더욱 본연의 악마에 가까운 권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렇게 강한 힘을 얻은 자는 다시금 인간과 계약할 수 있다.
인간 : 신에 비해 매우 연약하나 개체 수가 가장 많은 종족. 신들이 그림자 아래에 숨어 지내는 동안 지구 상에서 문명을 이룩해 냈다.
신화생물 : 동물과 유사하나 마력과 권능을 가진 일명 환상종을 신화생물이라 부른다. 인간이나 신족과 혼혈은 불가능하다.
이들은 엘로힘, 아흐리만에 비해 지능이 낮고 권능이 약하다. 보통 신의 통제하에 놓여 있다.
개중에 신의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는 개체가 드물게 생긴다. 이들을 움브라(umbra)라고 부른다. 엘로힘 중 이것의 처분을 도맡아 하는 자들이 소수 있다.